빛을 그리던 사람, 마침내 빛이 되다 — 방혜자

빛을 그리던 사람, 마침내 빛이 되다 — 방혜자

그림 속에서 빛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흰 물감을 칠한다고 빛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방혜자(1937–2022)의 작품 앞에 서면 조금 다른 종류의 빛을 만나게 됩니다. 화면 위에 비친 빛이라기보다, 색과 물질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스며 나오는 듯한 빛입니다. 평생 그 빛을 찾아간 화가 방혜자에게 빛은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생명과 사랑, 기쁨과 평화로 이어지는 세계의 근원에 가까웠습니다.


[[image:https://img.hankyung.com/photo/202209/01.31240709.1.jpg|빛의 탄생, 728x705cm, 2019]]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방혜자는 1956년 서울대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 화단은 전쟁 이후 새로운 현대미술의 언어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초기에는 유화를 그렸지만, 그의 시선은 곧 더 넓은 세계로 향했습니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에콜 드 파리’의 흐름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한 그는 두 문화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동양과 서양이 자신의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길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만남의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서구 현대미술의 추상성과 한국의 서예적 감각,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양적인 사유가 한 화면에서 겹쳐집니다. 특히 방혜자는 물감만으로 색을 만드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종이와 천, 안료 등 다양한 재료를 실험했고, 닥종이와 자연 안료를 사용하면서 물질 그 자체가 빛을 품게 하는 방법을 탐구했습니다. 세르누치 미술관이 2019년 그의 전시 제목을 **‘그리고 물질은 빛이 되었다(Et la matière devint lumière)’**라고 붙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방혜자의 작업에서 물질과 빛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깊이 탐구할수록 그 안에서 빛이 태어나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image:https://parisconsortium.hypotheses.org/files/2019/02/Exposition-de-Bang-Hai-Ja.jpg|'그리고 물질은 빛이 되었다' (2019) 전시 포스터]]

이런 그의 회화에는 뚜렷한 중심 이미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원과 둥근 궤적입니다. 방혜자는 1970년대부터 원형의 형태를 우주를 나타내는 추상적 언어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은 기하학적으로 냉정하게 계산된 도형이라기보다 퍼져 나가는 에너지처럼 느껴집니다. 화면의 중심에서 색이 번지고, 겹치고, 다시 밝아집니다. 그래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무엇을 그렸을까’를 찾기보다 ‘어디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세르누치 미술관 역시 그의 예술을 자연과 함께하는 일종의 공동 창조이자, 작품 내부에서 빛을 발생시키려는 오랜 탐구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긴 예술 여정은 놀랍도록 상징적인 장소에 도착합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입니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특히 깊고 신비로운 ‘샤르트르 블루’로 유명한 이 성당에서 2017년 생피아 예배당의 참사회실에 현대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기 위한 공모가 시작됐고, 이듬해 방혜자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약 30개의 제안 가운데 선택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독일 파더보른의 페터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과 협업해 제작한 네 개의 창은 2022년 설치되었습니다.

[[image:https://img.hankyung.com/photo/202604/01.44115613.1.jpg|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될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 서있는 방혜자 화백 © DRAC CVL et atelier Glasmalerei Peters.]]


여기서 방혜자는 샤르트르의 전통을 존중해 푸른색을 중심색으로 삼으면서도 자신의 원형과 추상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네 개의 창에는 그가 평생 말해 온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빛은 생명이고, 생명은 사랑이며, 사랑은 기쁨이고, 기쁨은 평화로 이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2024년 오랜 복원공사를 마친 샤르트르 대성당 보물관이 다시 문을 열면서, 이제 방문객들은 14세기 공간 안에서 방혜자의 네 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아름다운 귀결입니다. 젊은 시절 서울을 떠나 ‘빛의 도시’ 파리로 향했던 한국인 화가가 60여 년 동안 물질 속에서 빛을 찾았고, 생의 마지막 무렵에는 물감으로 빛을 그리는 것을 넘어 실제 햇빛이 통과하는 유리창을 만들었습니다. 회화와 조각, 서예와 스테인드글라스를 넘나든 그의 작업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어떻게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낼 것인가.**

방혜자는 2022년 9월 15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대작 가운데 하나인 샤르트르의 창에서는 지금도 하루의 시간과 날씨에 따라 빛이 달라집니다. 어쩌면 방혜자가 평생 그리려 했던 것은 빛의 ‘모습’이 아니라 빛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림 앞에서,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 앞에서 우리가 잠시 마음을 늦추게 된다면 그의 예술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