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으로 내려갈수록 미술은 낯설어진다 — 태즈메이니아의 문제적 미술관 MONA
미술관에 가기 위해 배부터 타야 한다면 어떨까요? 태즈메이니아의 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찾아가는 가장 특별한 방법은 호바트 도심의 부두에서 페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자동차로도 갈 수 있지만, 많은 관람객이 선택하는 MONA행 페리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이 독특한 미술관을 경험하는 첫 장면에 가깝습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2f9f89b7-1325-4e1a-a590-207bf37e5ac9.jpg|브룩스트리트 피어에서 출발하는 MONA행 페리 안]]
더 재미있는 것은 도착한 뒤입니다. 배에서 내렸다고 곧장 전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강변에서 미술관 입구까지 99개의 계단을 올라간 뒤, 이번에는 반대로 땅속 깊숙이 내려가야 합니다. 강 위를 달려 찾아가서, 땅속으로 내려가 예술을 만나는 미술관. MONA가 다른 미술관과 확연히 다른 경험을 주는 이유가 벌써 여기서 시작됩니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다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술관에 들어온 걸까, 거대한 지하세계에 들어온 걸까?’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f02fba76-bc38-4df3-9a53-6d519a213dd4.jpg|MONA입구]]
호바트 북쪽 베리데일의 더웬트강변에 자리한 MONA는 2011년 1월 21일 문을 열었습니다. 설립자는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 수학과 확률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도박으로 큰돈을 번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MONA는 그의 개인 컬렉션에서 출발한 사립 미술관입니다. 미술관 이름부터 ‘Museum of Old and New Art’, 즉 ‘옛것과 새로운 것의 미술관’입니다. 고대 유물과 현대미술을 시대순으로 얌전히 나누어 보여주기보다는 서로 충돌시키고 뒤섞으며 관람객의 감각을 흔듭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소장품은 약 3,200점에 이릅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460b6c8a-4048-4b97-8a34-702f877f5674.jpg|MONA 내 절벽 전경]]
이 미술관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건축부터 보아야 합니다. 설계를 맡은 펜더 카찰리디스(Fender Katsalidis)의 프로젝트 건축가 제임스 피어스는 MONA가 암벽 속으로 파고들어가도록 만들어졌으며, 일반적인 미술관처럼 정해진 관람 동선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내부에서는 매끈한 흰 벽 대신 암벽과 콘크리트, 철골 같은 구조 자체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품을 담는 중립적인 ‘화이트 큐브’를 만들기보다 건축과 작품이 서로 반응하는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던 것입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5c405a0c-7d7e-4034-8cbf-54ac79c3407b.jpg|MONA 내 전경]]
그래서 MONA에서는 ‘길을 잃는 것’조차 관람의 일부입니다. 공식 안내에도 내부가 어둡고 시끄럽거나 때로는 냄새가 날 수 있으며, 좁은 공간과 길을 잃는 듯한 느낌 역시 MONA를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실제 미술관은 지하 B1부터 B3까지 세 개 층으로 이어집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어두운 통로를 지나고, 방향을 바꾸고,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작품과 마주칩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7eff9f57-1d41-4a9d-8728-3e97c5e17de9.jpg|MONA 공식 앱에서 제공하는 미술관 내 지도]]
흥미로운 것은 이곳이 관람객에게 작품 앞에서 반드시 경건해질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MONA에는 미술과 전시뿐 아니라 라이브 음악, 음식과 와인, 바와 레스토랑, 도서관, 숙박시설까지 함께 있습니다.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놀이터에 가깝습니다. 호바트에서 페리를 타고 더웬트강을 거슬러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MONA를 경험하는 대표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유쾌함 뒤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나란히 놓으면 우리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판단할까요? 아름다운 것과 불편한 것 사이에는 어디쯤 경계가 있을까요? MONA에서는 작품이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도, 관람객을 편안하게 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때로는 기괴하고 불쾌하며 도발적인 작품까지 관람 경험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실제로 미술관 측도 일부 작품이 관람객에게 상당히 강렬하거나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아마 MONA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이 작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는 질문보다 “나는 왜 이것을 보고 이런 기분이 드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찾아옵니다. 미술관이 정답을 설명해주는 장소라기보다 관람객 자신의 취향과 본능, 불편함까지 시험해보는 장소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MONA를 나오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특정 작품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둠 속으로 내려가던 계단, 암벽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작품, 길을 잃었다가 예상치 못한 공간과 마주쳤던 순간들이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처럼 기억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 예술을 보관하는 상자라면 MONA는 그 상자 자체를 뒤집어놓은 곳에 가깝습니다. 태즈메이니아의 땅속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예술과 새로운 예술, 아름다움과 불편함, 지성과 본능을 한데 뒤섞어 놓고 관람객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이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까?”
어쩌면 MONA의 전시는 미술관 문 앞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바트의 부두에서 페리에 올라타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지하의 낯선 세계를 헤맨 뒤 다시 더웬트강의 빛을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끝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