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접어 가방에 넣을 수 있다면 — 서도호가 기억을 짓는 법
집을 떠나 아주 먼 곳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의외로 거창한 풍경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관문의 손잡이, 복도의 폭, 계단을 오를 때의 감각, 창문으로 들어오던 빛처럼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작은 것들. 서도호의 작품 앞에 서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건물일까요, 아니면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의 기억일까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도호는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뒤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예일대학교에서는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1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하며 국제 미술계에서 널리 주목받았고, 이후 서울과 뉴욕, 런던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활동해왔습니다.
그의 작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이동’의 경험입니다. 미국에 처음 정착했을 때 서도호에게 새로운 공간은 낯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방과 집을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간과 자신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방법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다 마침내 놀라운 발상을 합니다. **집을 기억하는 대신, 집 자체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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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등장한 것이 서도호를 대표하는 ‘천으로 만든 집’입니다. 그는 자신이 실제 살았던 서울의 집과 뉴욕·런던 등지의 주거 공간을 반투명한 천으로 실제 크기에 가깝게 재현해왔습니다. 벽과 문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계단과 복도, 문고리, 전등 스위치, 수도관과 가전제품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옮깁니다. 단단하고 무거워야 할 건축물이 천으로 만들어지자 집은 유령처럼 투명하고 가벼워집니다. 접으면 다른 도시로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스미스소니언미술관은 이러한 작업을 현대인의 정체성뿐 아니라 기억과 이주, ‘집’이라는 개념을 탐구하는 일종의 ‘fabric architecture’로 설명합니다.
이런 서도호의 ‘천으로 만든 집’을 한국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뜻밖의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입니다.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 설치된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2019)**은 반투명한 폴리에스터 천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두 채의 집이 서로 겹쳐진 채 공중에 떠 있는 대형 설치작품입니다. 한쪽에는 서도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서울의 한옥이, 그 바깥에는 미국 유학 시절 처음 머물렀던 로드아일랜드의 주택이 포개져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대륙에 존재했던 두 개의 ‘집’이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진 셈입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7d250286-c952-46ba-943a-2c132293cca4.jpg|집 속의 집, 서도호 (이미지 출처: 서울경제 기사)]]
무엇보다 이 작품이 **공항**에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공항은 누군가에게는 집을 떠나는 곳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오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곳입니다. 국경과 도시를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이 공간에 서도호는 오히려 ‘집’을 띄워놓았습니다.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집은, 이주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집이 존재하는 방식과도 닮아 보입니다. 실제 장소에서는 멀어져도 과거의 집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집과 포개지며 마음속에 남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행객들이 오가는 인천공항의 〈집 속의 집〉은 서도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집, 이동, 기억이라는 주제를 장소 자체와 함께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들이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도호에게 집은 고정된 주소라기보다 **몸에 겹겹이 쌓이는 기억의 피부**에 가깝습니다. 서울에서 살았던 집도, 미국에서 머물렀던 아파트도, 런던의 공간도 떠난 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남습니다. 그래서 그의 투명한 집 안을 걸어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을 걷는 동시에, 이상하게도 자신의 옛집을 떠올리게 됩니다. LACMA 역시 그의 실제 크기 천 건축물들이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물질적인 형태로 바꾸면서 집, 이주,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다룬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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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제를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2012년 미국 UC 샌디에이고에 설치된 **〈Fallen Star〉**입니다. 캠퍼스의 Jacobs Hall 꼭대기를 바라보면 작은 파란색 미국식 주택 한 채가 건물 모서리에 비스듬히 걸려 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집이 7층 높이 건물에 가까스로 걸쳐진 듯한 모습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과 건물이 서로 다른 각도로 기울어 있어 몸의 균형감각마저 흔들립니다. 익숙한 가정집인데 몸은 끊임없이 “여기는 낯선 곳”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이 작품에는 서도호 자신의 이주 경험이 깊게 스며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각을 그는 마치 하늘에서 낯선 세계로 떨어진 것 같은 경험과 연결했습니다. 그래서 〈Fallen Star〉의 기울어진 집은 단순히 재미있는 공공조각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언어 속에 내려앉은 사람이 새로운 세계에 몸을 맞추는 경험을 건축으로 바꿔놓은 작품입니다. 특히 대학 캠퍼스라는 장소도 절묘합니다. 이곳의 학생들 역시 저마다 자신의 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 도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도호의 작품이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서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어떤 장소를 떠나고 또 다른 장소에 정착합니다. 어린 시절의 집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도시를 옮기고, 때로는 나라를 건너갑니다. 장소는 사라져도 그곳에서 익힌 몸의 감각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도호의 투명한 집 앞에서는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집들은 내 안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서도호는 무거운 벽돌 대신 얇은 천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가벼운 집 안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이동, 그리움과 적응의 기억이 묵직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집은 더 이상 주소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집이란 우리가 떠나온 뒤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가지고 다니는, **접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