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광주에서 시작되는 다섯 번의 변화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광주에서 시작되는 다섯 번의 변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런 말을 건네받는다면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라는 것일까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시가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답도 내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908년에 발표한 시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에서 왔습니다. 머리도 팔다리도 사라진 고대 조각의 파편을 바라보던 화자는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자신이 조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오히려 조각이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강렬한 감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는 돌연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왜 바꾸어야 하는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열린 명령이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입니다.

[[image:https://img5.yna.co.kr/photo/yna/YH/2026/09/04/PYH2026090411490005400_P4.jpg|출처: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260903169951054)]]

싱가포르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호추니엔(Ho Tzu Nyen)이 예술감독을 맡은 이번 전시는 ‘변화’를 극적인 사건이나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실천**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흔히 혁명이나 재난처럼 삶이 단번에 뒤집히는 순간을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일 하는 작은 행동과 습관, 누군가를 돌보는 일, 몸을 훈련하는 일, 땅을 경작하고 배우는 일 역시 오랜 시간 쌓이면 사람과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호추니엔은 그래서 예술 역시 한 번의 영감보다 오랫동안 반복하고 실험하는 ‘삶의 기술’로 바라봅니다. 이번 전시가 역대 광주비엔날레 가운데 가장 적은 43명의 작가와 그룹으로 구성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많은 작가를 빠르게 지나가기보다 한 작가의 여러 작업을 통해 오랜 시간 축적된 실천을 들여다보려는 선택입니다.

전시는 이 거대한 질문을 다섯 개의 풍경으로 펼쳐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그 여정은 아주 작은 **분자**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를 둘러싼 **공기**에 도달합니다.

제1전시실 ‘분자와 나’에서는 물질과 인간을 고정된 존재로 보는 시선부터 흔듭니다. 우리 몸과 세계를 이루는 물질은 끊임없이 분해되고 이동하며 다시 결합합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 역시 완성된 하나의 형태라기보다 계속 변화하고 교환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에서 변화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af08ea2c-c528-416d-a1ec-b14547092c2d.jpg|제1 전시실 전경]]

제2전시실 ‘신체와 결속’에서는 질문이 몸과 관계로 이동합니다. 몸은 훈련되고, 돌봄을 받고, 상처 입고, 다른 몸과 접촉합니다. 반복되는 행동은 때로 몸을 구속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에서 변화는 머릿속의 관념이 아니라 몸에 축적되는 기억이 됩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29d5d9a2-d39e-4f34-9f23-6be5d9cb9012.jpg|제2 전시실 전경]]

이어지는 제3전시실 ‘풍경과 배움’에서는 시야가 다시 넓어집니다. 숲과 들판, 학교와 공동체가 배움의 장소가 됩니다. 인간이 땅을 경작하지만, 반대로 그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인간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운림산방의 전통과 허백련의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 임동식과 자연미술가 우평 등의 존재는 ‘예술가가 무엇을 만드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배우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참여 작가군에는 한국과 아시아의 역사적 실천부터 동시대 미디어 작업까지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의 목소리가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83f3641a-5aae-441c-84bb-2b9e07b277f9.jpg|제3 전시실 전경]]

제4전시실 ‘우주와 변화’에 이르면 시간의 단위마저 달라집니다. 꿈과 신화, 화산과 지질학적 시간,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제주 화산과 제주돌문화공원이 참여 작가 목록에 포함된 것도 인상적입니다. 인간의 한 생애를 훌쩍 넘어서는 행성의 시간 앞에서 ‘변화’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한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사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변해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83b5cb52-8ccf-4277-8bf1-d1efde0f5ed9.jpg|제4 전시실 전경]]

그리고 마지막 제5전시실 ‘공기와 발화’에서 단단했던 전시 공간은 마치 풀어지듯 소리와 호흡, 언어와 공기로 확장됩니다. 처음에는 분자를 바라보던 관객이 이제 자신도 그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분자 → 신체 → 풍경 → 우주 → 공기.** 다섯 전시실은 결국 서로 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삶을 서로 다른 크기로 바라보는 다섯 개의 렌즈에 가깝습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79c435f9-5e01-458c-8891-27d81fb7bce8.jpg|제5 전시실 전경]]


그리고 이 전시가 열리는 곳이 ‘광주’라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호추니엔은 광주를 변화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특별한 도시로 바라봅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지닌 이곳에서 변화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만으로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 ‘오월어머니집’이 참여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광주에서는 기억하고 말하고 함께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하나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호추니엔은 광주의 민주화 투쟁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공명하며, 이 도시에서는 변화가 “살아 있는 역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비엔날레를 볼 때 반드시 모든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 작품 앞에서 조금 오래 머물러 보는 편이 이 전시의 정신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 이상하게 자꾸 돌아보게 되는 이미지, 설명하기 어려운데 오래 기억에 남는 소리 하나를 발견해 보는 것입니다.

릴케의 시 속 화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바꾸라고 지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당연하게 바라보았던 것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시선의 이동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말하는 변화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다르게 보고, 다시 해보고, 오래 반복하는 것.**

어쩌면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명령이라기보다 전시장을 나서는 우리에게 건네는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는 무엇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