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팔렸지만, 이미지는 누구의 것일까 — 예술과 저작권의 오래된 긴장

그림은 팔렸지만, 이미지는 누구의 것일까 — 예술과 저작권의 오래된 긴장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고 상상해봅시다. 운 좋게 그 작품을 구입해 거실 벽에 걸었습니다. 이제 이 그림은 분명 내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어 팔아도 될까요? 작품을 조금 변형해 광고에 사용한다면요?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품의 ‘소유’와 ‘저작권’이 갈라집니다. 작품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그 작품을 복제하고 배포하거나 변형해 이용할 권리를 갖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저작권은 회화·조각·사진 같은 시각예술을 비롯한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에게 일정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저작권에는 복제·배포·전시·변형 등과 관련된 경제적 권리뿐 아니라, 자신이 창작자임을 밝히고 작품이 부당하게 훼손·변형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저작인격권’이라는 개념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예술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저작권 개념은 훨씬 뒤에 등장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복제’였습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책과 이미지가 대량 복제되면서, 누가 창작물을 인쇄하고 판매할 수 있는가가 경제적 문제가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1710년 시행된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은 근대 저작권법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이전에는 인쇄와 출판을 통제하는 제도가 중심이었다면, 이 법은 저자에게 자신의 저작물을 일정 기간 인쇄·재인쇄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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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 창작물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나라에서 보호받던 작품이 다른 나라에서는 무단으로 복제되는 문제가 생겼고, 1886년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이 채택됩니다. 오늘날 국제 저작권 체계의 핵심 토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른협약은 다른 회원국 작가의 작품도 자국 작가의 작품처럼 보호하는 ‘내국민대우’와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 권리가 발생하는 ‘무방식주의’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미술에서 저작권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것은 20세기입니다. 예술가들이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피카소와 브라크의 콜라주는 신문과 인쇄물을 화면에 붙였고, 마르셀 뒤샹은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미술관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팝아트에 이르면 대중매체의 이미지는 아예 미술의 주요 재료가 됩니다. 앤디 워홀의 작업 세계에서 유명인 사진과 상품 이미지는 반복되고 변형됩니다. 여기서 현대미술의 중요한 질문이 생겨납니다. **남의 이미지를 가져왔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작일까요, 아니면 원작의 이용일까요?**

이 질문은 ‘차용미술(appropriation art)’에서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현대미술은 때때로 기존 이미지를 인용하고 복제하고 재맥락화하는 행위 자체를 창작 방법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예술적 의미가 새로 생겼다는 사실이 곧바로 저작권 문제를 없애주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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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앤디 워홀 재단과 사진작가 린 골드스미스 사이의 소송입니다. 워홀은 골드스미스가 촬영한 가수 프린스의 사진을 바탕으로 ‘Prince Series’를 제작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3년 판결에서 문제 된 특정 상업적 이용과 관련해 워홀 재단 측의 공정이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판결은 현대미술에서 ‘변형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차용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부각시켰습니다.

반대로 저작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저작재산권이 원칙적으로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사망 후 70년까지 존속합니다. 보호기간이 끝난 저작물은 저작재산권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래된 명화를 활용한 포스터와 디자인, 새로운 창작물이 끊임없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래된 작품 자체의 저작권이 만료되었다고 해서 그 작품을 새롭게 촬영한 사진 등 별도의 창작물에 관한 권리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 이용에서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작권은 다시 거대한 변곡점 앞에 서 있습니다. 1996년 WIPO 저작권조약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보호를 다루었고, 오늘날에는 이미지가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복제·편집·공유되는 것을 넘어 생성형 AI가 방대한 기존 창작물을 학습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창작자는 누구인가’, ‘기존 작품의 이용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작권은 미술 바깥에 붙어 있는 딱딱한 법률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의 본질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예술가는 언제까지 자신의 작품을 통제할 수 있는가. 다른 예술가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은 어디까지 창작인가. 그리고 사회는 언제부터 한 작품을 공동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보통 “누가 그렸을까?”를 먼저 묻습니다. 저작권은 거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합니다.

**“이 작품을 우리는 어디까지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시대와 기술이 바뀔 때마다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