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서도호, 그 이전과 이후를 만나다

서도호의 이름을 들으면 아마 많은 사람이 먼저 반투명한 천으로 만든 집을 떠올릴 겁니다. 실제로 살았던 집과 복도, 계단을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들은 이제 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서도호》에서는 잠시 그 유명한 ‘집’을 잊어보아도 좋겠습니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완성된 서도호의 세계를 다시 확인하는 데 있기보다, **그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지금 어디까지 뻗어갔는지를 볼 수 있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단서는 뜻밖에도 전시실 밖 복도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미술관은 이곳을 **‘시드 뱅크(Seed Bank)’**, 즉 ‘씨앗 저장고’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유년기의 드로잉과 조각, 대학 졸업작품, 미국 유학 이전의 설치 작업과 각종 기록이 한데 모여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옥 마당의 나무를 깎아 만든 해양동물 조각도 그중 하나입니다. 훗날 세계적인 설치미술가가 될 사람의 어린 시절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이미 **평면과 입체, 사물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려는 호기심**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번 전시를 하나의 거대한 나무라고 한다면, 시드 뱅크는 그 나무가 어디에서 싹을 틔웠는지 보여주는 장소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작품만큼이나 **드로잉을 천천히 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서도호에게 드로잉은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들기 전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보조 수단에 머물지 않습니다. 종이와 실, 판화와 청사진 등 여러 재료와 제작 방식을 실험하며 하나의 독립적인 작업 세계를 이루어왔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의 판화·제지 전문기관 STPI와의 협업은 그가 아이디어를 어떻게 재료와 제작 기술의 실험으로 발전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와 연계해 미술관이 아예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으로 STPI와 서도호의 협업 과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019e6479-6fd7-49b0-84b4-7d1e08715c1e.jpg|서도호 드로잉 작품 전경]]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28a4d93e-9118-4e58-82ea-1ef85fb1b30b.jpg|작은문, 2017, 서도호 (STPI 수제 종이에 채색 젤라틴지, 실, 356 x 229 cm)]]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2ac77f24-a3c5-4c39-86f5-b424aaa040c7.jpg|현자, 서도호]]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서도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의 집’을 이야기하는 작가에서 ‘우리’를 질문하는 작가**입니다.
〈Who Am We?〉와 〈바닥〉은 그 변화를 이해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Who Am We?〉에서는 수많은 개인의 얼굴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이미지를 이루고, 〈바닥〉에서는 수많은 작은 인물상이 관람객이 딛고 선 투명한 판을 아래에서 떠받칩니다. 여기서는 집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 혼자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우리가 서 있는 사회 역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관계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2be768e2-8d28-4f35-afa5-7ffddc4a3552.jpg|서도호 ‘Who Am We?’(2000)와 ‘바닥’(1997~2000)이 설치된 전시장]]
이 질문을 품고 전시를 보면 서도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공간’도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공간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추억을 담아두는 그릇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런던의 대규모 공공주택단지를 다룬 **〈로빈 후드 가든〉**, 한국의 **〈동인아파트〉**, 산업지역을 다룬 **〈통로/들: 문래동〉** 같은 작업도 함께 소개됩니다. 미술관이 이 작품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 배치한 것은 서도호의 관심이 개인의 거주 경험에서 도시와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는 장소로 확장되어 왔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작품을 시대순이나 주제별로 딱딱 나누지 않고 초기작과 최근작, 드로잉과 설치, 집과 신체, 공간과 시간이 서로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e11bee29-c89f-4d07-b4d5-03aef826903c.jpg|러빙/러빙: 서울 집(2013-2022)]]
그런 의미에서 전시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축은 **‘연결’**입니다. 오랫동안 이어온 **‘다리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입니다. 서도호의 작업에서 다리는 단순히 두 지점을 잇는 구조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장소와 사람, 현실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세계를 연결하려는 상상으로 이어집니다.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질문이 어느 순간 도시와 사회, 공동체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서도호의 모습도 조금 달라집니다. 이번 전시에서 ‘다리 프로젝트’가 별도의 주요 오디오가이드 항목으로 다뤄지고 관련 자료까지 제공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전시는 마지막에 의외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더 큰 도시나 더 거대한 건축으로 나아가는 대신, 아주 가까운 **가족**에게로 돌아옵니다.
2층 MMCA스튜디오에서 처음 공개되는 **〈사랑의 기억〉(2026)**은 이번 전시에서 특히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들을 달고, 그 안에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 담긴 사물들을 넣었습니다. 미술관은 이 공간을 서도호가 ‘부성애(Fatherhood)’라는 사적이고 내밀한 주제로 돌아오는 장소라고 설명합니다. 세계 여러 도시의 건축과 공동체를 탐구하던 시선이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image:https://img.khan.co.kr/news/r/600xX/2026/08/26/news-p.v1.20260826.27618de4fe9647d3b9d122ba9de3c4be_P1.webp|사랑의 기억, 서도호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기사)]]
[[image:https://pub-f6e995b5adb6448c86478bc9e34840da.r2.dev/admin-library/7af80fdb-e4e2-4465-8283-074d7d7a4f99.jpg]]
이 작품 앞에서는 서도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공간’이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공간은 꼭 벽과 천장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옷에 달려 있던 작은 주머니 하나에도 함께 살아온 시간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공동체로, 다시 가족과 몸으로.**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서도호의 궤적은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이렇게 계속 넓어졌다가 다시 안으로 돌아오는 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전시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닙니다. **2026년 12월 18일부터** 서울박스에는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이 추가 공개됩니다. 여러 유닛으로 이루어진 작품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따라서 12월 18일 이후 전시를 찾는 관람객이라면 현재의 전시에 또 하나의 거대한 장면이 덧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도호》를 관람할 때는 그래서 유명한 작품부터 찾아가기보다 **‘이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까지 변해왔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걸어보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깎은 작은 나무 조각과 수백 장의 드로잉, 수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작품, 도시의 흔적, 그리고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작은 주머니가 한 작가의 세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전시는 일종의 거대한 작업실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서도호는 완성된 답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어쩌면 그 유명한 ‘집’ 자체가 아니라, **한 예술가가 30여 년 동안 그 집에서 얼마나 멀리 걸어 나갔고, 또 어떤 새로운 질문을 품고 돌아오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