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만 보고 나오기엔 너무 크다, 바티칸 미술관을 걷는 법

미켈란젤로만 보고 나오기엔 너무 크다, 바티칸 미술관을 걷는 법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예술의 역사를 만난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로마 한가운데 자리한 바티칸 시국, 그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미술관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바로 바티칸 미술관(Vatican Museums)입니다.

사실 ‘바티칸 미술관’이라는 이름부터 조금 특별합니다. 하나의 건물에 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 아니라, 역대 교황들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미술·고고학·민족학 자료와 교황궁의 방, 예배당, 회랑들이 서로 이어진 거대한 ‘미술관들의 집합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역시 이곳을 ‘Museum of Museums’, 즉 ‘미술관들의 미술관’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역사의 중요한 출발점은 16세기 초입니다. 위키데이터는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을 1506년으로 기록하며 창립자로 교황 율리우스 2세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티칸의 예술 공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5세기 교황 니콜라오 5세가 프라 안젤리코에게 자신의 개인 예배당을 장식하도록 했던 시기까지 만나게 됩니다. 뒤이어 알렉산데르 6세는 핀투리키오에게 자신의 거처를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하게 했고, 오늘날 우리는 이 공간을 ‘보르자 아파트먼트’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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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르네상스가 절정에 이르던 시대, 바티칸은 그야말로 거대한 예술 현장이 됩니다. 율리우스 2세가 선택한 교황궁의 방들은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이 1508년부터 1524년까지 프레스코화로 장식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라파엘로의 방’입니다. 그 가운데 서명의 방에 들어서면 철학자들이 거대한 고전 건축 안에 모여 있는 《아테네 학당》을 만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지성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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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티칸 미술관의 여정에서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소는 역시 시스티나 예배당일 것입니다. 이곳은 미켈란젤로 한 사람의 공간만은 아닙니다. 1480년대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 당대의 거장들이 벽면에 모세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그렸고, 이후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창세기》의 장면들을 펼쳐놓았습니다. 제단 벽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 역시 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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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잠시 천장이 아니라 발걸음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바티칸 미술관은 몇 점의 걸작만 보고 돌아서기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길이 약 120m에 이르는 ‘지도의 방(Gallery of the Geographical Maps)’에서는 16세기 사람들이 바라본 이탈리아의 지리적 세계가 벽을 따라 이어집니다. 그레고리오 13세 시대에 제작된 이 공간을 걷다 보면 미술과 지도 제작, 과학과 종교가 지금처럼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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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티칸 미술관을 볼 때는 ‘유명한 작품을 몇 점 보았는가’보다 ‘어떤 시대들을 통과했는가’를 생각해보는 편이 더 흥미롭습니다. 고대 조각에서 르네상스의 프레스코화로, 교황의 개인 공간에서 거대한 회랑으로 이동하다 보면 한때 권력과 신앙을 위해 만들어지고 수집된 예술이 수백 년 뒤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문화유산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직접 걷게 됩니다. 1973년에는 바오로 6세가 현대미술 컬렉션을 개관하면서 그 시간의 범위도 현대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관람을 계획한다면 시간도 넉넉히 잡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공식 안내 기준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하며 마지막 입장은 오후 6시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은 휴관하지만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료 개관하며, 일부 종교 축일과 겹치는 경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바티칸 미술관을 나오고 나면 이상하게도 작품 한 점보다 ‘공간을 통과했던 경험’ 전체가 기억에 남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긴 회랑을 지나고, 수백 년 전 교황이 머물렀던 방에 들어가고, 마침내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수많은 인물로 뒤덮인 미켈란젤로의 세계와 마주하는 여정. 바티칸 미술관은 작품을 진열해 놓은 장소라기보다, 서양 미술과 종교, 권력과 지식이 서로 얽혀온 수백 년의 시간을 직접 걸어서 읽는 곳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유명한 걸작을 찾아 다음 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 천장과 벽, 창문과 회랑까지 바라보세요. 바티칸에서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그 작품들이 놓여 있는 ‘장소 자체’를 바라보는 일이 또 하나의 감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