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권력을 얻고, 예술로 시간을 이긴 사람들 — 메디치 가문

돈으로 권력을 얻고, 예술로 시간을 이긴 사람들 — 메디치 가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서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을 비롯해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 뒤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하나의 이름이 있습니다. 메디치(Medici). 화가도 조각가도 아니었던 이 은행가 집안은 어떻게 르네상스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을까요?

메디치 가문의 힘은 처음부터 왕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발점은 돈, 정확히는 금융이었습니다. 14세기 말부터 성장한 메디치 은행은 15세기 유럽의 유력 금융기관으로 발전했고, 막대한 재력은 피렌체에서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졌습니다. 15세기 피렌체에서 메디치 사람들은 공식적인 군주의 칭호 없이도 사실상 도시의 정치·상업·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술이었습니다.

[[cards:art_figure:16635]]

그 중심에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있습니다. 코시모는 예술과 건축,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가 된 메디치 궁전은 미켈로초에게 맡겼고, 산 로렌초 성당과 관련된 사업에는 브루넬레스키가 참여했습니다. 도나텔로 역시 메디치의 중요한 후원을 받은 예술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작품들을 ‘르네상스의 걸작’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의 피렌체 시민에게 건축과 조각은 동시에 후원자의 부와 교양, 신앙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강력한 시각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예술과 권력은 메디치의 피렌체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cards:art_figure:16636]]

이 관계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는 코시모의 손자, ‘위대한 로렌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내는 후원자가 아니라 직접 시를 쓰고 고전과 철학을 사랑한 인문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 같은 화가,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피코 델라 미란돌라, 시인 폴리치아노 등이 모여들었습니다. 피렌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적 살롱처럼 기능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인연은 젊은 미켈란젤로와의 만남입니다. 1490년 무렵부터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과 가까운 조각가 베르톨도 디 조반니에게 배우며 메디치가의 환경 속에서 생활했고, 그곳에서 고대 조각과 인문주의자들의 사상을 접했습니다. 훗날 서양미술사의 거장이 되는 소년이 고전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경험했던 장소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던 셈입니다.

메디치의 영향력은 피렌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가문에서는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 등 교황들이 나왔고,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마리 드 메디시스는 혼인을 통해 프랑스 왕비가 되었습니다. 상인과 은행가로 성장한 집안이 유럽 왕실과 교황청으로까지 뻗어나간 것입니다.

[[cards:museum:1642]]

16세기에 이르면 메디치는 사실상의 도시 지배자에서 정식 군주 가문으로 변모합니다. 코시모 1세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기반을 다졌고, 그의 명령으로 조르조 바사리가 1560년부터 우피치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우피치(Uffizi)’라는 이름은 본래 ‘사무실들(offices)’을 뜻합니다. 지금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알려진 건물이 애초에는 피렌체의 행정기관들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권력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피티 궁전과 보볼리 정원 역시 메디치 시대를 거치며 왕조의 문화적 위엄을 보여주는 거대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문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어쩌면 전성기가 아니라 마지막에 있습니다.

[[cards:art_figure:66]]

1737년 메디치 왕조의 남계가 끊기면서 토스카나의 통치권은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때 마지막 메디치 가문의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Anna Maria Luisa de’ Medici)는 이른바 ‘가문 협약(Family Pact)’을 통해 메디치가가 수백 년 동안 축적한 회화·조각·도서·보석 등의 컬렉션을 피렌체에 남겼습니다. 핵심 조건은 이 유산을 수도와 토스카나 밖으로 반출하지 않고, 국가의 장식이자 공공의 유익을 위해 보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도 이 결정이 남긴 유산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피렌체를 걷다 보면 묘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메디치 가문은 18세기에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도시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에서 메디치 궁전으로, 우피치에서 피티 궁전과 보볼리 정원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메디치 컬렉션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들의 예술 후원을 순수한 예술 사랑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과 명예, 정치적 정당성, 가문의 위신이 예술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메디치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들은 돈이 작품을 만들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이 다시 한 가문과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일찍 보여주었습니다.

은행은 사라지고 정치 권력도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원하고 수집하고 보존했던 예술은 남았습니다. 어쩌면 메디치 가문이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권력은 한 시대를 지배하지만, 잘 보존된 예술은 그 시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