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展: 낯선, 꿈의도시

김지은展: 낯선, 꿈의도시

익숙한 풍경의 재발견, 감각의 전환
우리는 매일 스쳐가는 풍경을 얼마나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까. 오가는 길 위의 건축물과 창밖으로 스쳐가는 서로 닮은 구조와 형태의 아파트는 어느 순간 바라봄의 대상에서 물러나 삶의 배경이 된다. 너무 익숙한 풍경은 그렇게 우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고, 그곳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 관계의 흔적 또한 희미해진다. 익숙함이 장소의 고유한 감각을 지워갈 때, 도시는 장소인 동시에 비장소적인 풍경으로 변모한다. 김지은은 바로 그 익숙함 속에 잠복한 낯섦을 회화의 대상으로 불러낸다.
작가가 주목해온 것은 신도시라는 특정 공간을 넘어, 계획과 효율의 논리로 조직된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체의 장소 경험이다. 균질화된 주거 환경은 삶을 수용하면서도 장소와의 관계를 유예하고, 거주하는 공간을 기능적 환경으로 치환한다. 이때 도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감각이 교차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드러난다. 장소에 있으면서도 장소에 속하지 못하는 역설, 곧 장소 소외의 감각이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곳에 머물러 형성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낯선 환경을 관찰하고 그곳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탐색해왔다. 이같은 장소 경험은 장소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한편, 낯선 곳에서의 거주는 장소로부터의 소외를 자각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 장소와 관계를 맺고 새로운 장소감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도시를 향해 지속되어온 관심의 궤적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이해하고 새롭게 감각하고자 하는 작가적 필연성이 놓여 있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을 무심히 지나치기보다 그 이면에 잠재된 낯선 감각을 포착하고, 평범한 장면 속에서 다른 의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태도는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
그 시선은 회화의 방법론에도 깊이 스며 있다. 아파트의 외벽과 창, 실내의 사물과 거리의 장면은 사진과 이미지, 사물과 기억의 파편을 채집하고,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병치하는 콜라주는 이미 주어진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특히 포토콜라주에서 브리콜라주, 그리고 회화와 설치로 확장되어온 방법론은 서로 분리된 장소와 시간, 이미지와 물질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생성한다. 콜라주는 현실을 재현하는 기법을 넘어, 익숙한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장소감을 구축하는 사유의 방식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 옆집 >, < 쇼룸 >, < 아파트 컬러: 트렌드 vs 르 코르뷔지에 > 등의 작업은 이러한 관심의 궤적 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표면을 바라본다. < 옆집 > 에서 반복되는 아파트 외벽의 구조는 기능적 질서 안에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빛과 표면을 드러내고, < 쇼룸 > 에서는 주거 공간의 이미지와 욕망이 중첩되며 실제의 장소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흔든다. 이번 전시에 함께 놓이는 < 그림자 > 는 건축의 실체보다 그곳에 머문 빛과 그림자의 흔적을 포착하며 도시를 또 다른 감각의 장으로 확장한다. 서로 다른 작업이지만, 도시의 표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안에서 계속해서 변주된다. 사진과 콜라주, 회화의 경계를 오가는 이러한 방식은 현실의 한 장면을 충실히 옮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현실을 다시 배열하고 낯설게 보는 과정에 가깝다.
작가는 하나의 확정된 시점에 머무르기보다 서로 다른 시선과 시간의 층위를 겹쳐놓음으로써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도시의 표면에 균열을 만든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풍경이 다른 모습으로 떠오른다. 익숙한 아파트의 창과 거실, 반복되는 건축의 표면, 빛에 의해 길어진 그림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화면에 호출되지만, 그 밑바탕에는 도시의 표면을 새롭게 감각하려는 하나의 시선이 흐른다. 실제의 장소와 이미지, 기억과 현재, 사적인 삶과 규격화된 공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간극은 익숙한 감각을 흔들고, 우리가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을 되묻게 한다.
신도시의 균질화된 풍경에서 경험하는 낯섦과 불안,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감각은 장소의 언캐니 (Uncanny) 로 읽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불안이나 기이함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연속성을 잠시 중단시키며 익숙한 공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전환의 순간이 된다. 낯선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의 표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도린 매시가 장소를 서로 다른 관계와 시간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장으로 바라보았듯, 김지은에게 장소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된다. 장소 소외는 장소의 상실로 귀결되기보다, 새로운 관계와 장소감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지은의 회화는 도시를 재현하는 화면이라기보다 장소와 다시 관계 맺기 위한 하나의 장소에 가깝다. 콜라주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연결하고, 이미지와 물질을 병치하며, 익숙한 풍경에 낯선 감각을 불러들이는 과정은 장소 소외의 경험을 새로운 장소감으로 전환하는 실천이 된다. 작품은 특정 장소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을 새롭게 바라보고 기억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를 열어 보인다.
《낯선, 꿈의 도시》 에서 ‘ 꿈 ’ 은 이미 주어진 도시를 다르게 감각하는 순간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이다. 익숙한 풍경에 잠재된 낯섦을 발견하고, 장소성을 잃어가는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것. 그렇게 회화는 도시의 표면을 넘어 그 안에 잠재된 다른 장소를 호출한다. 어쩌면 ‘ 꿈의 도시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익숙한 장소를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 새롭게 열리는 가능성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우리가 이미 살아가고 있는 도시, 매일 마주하는 창과 벽,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새롭게 감각된다.
《낯선, 꿈의 도시》 는 그 낯섦의 순간에 우리를 잠시 머물게 한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풍경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발견하도록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익숙한 도시에서,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
엄미술관 학예사 최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