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리움미술관은 야외 데크에 세계적인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 (Gabriel
Orozco, 1962년생, 멕시코)가 구상한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선보입니다. 리움이 2004년 개관 이래 처음 시도하는 커미션
정원 프로젝트로, 기존의 야외 조각 정원의 형식을 넘어 건축과 자연,
그리고 공공의 경험이 공존하는 장소특정적 환경으로 데크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한 시도입니다.
리움미술관의 야외 데크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적 작가들의 대형 조각이
자리해온 공간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칼더의 〈거대한 주름〉(2004–2005),
루이즈 부르주아의 〈엄마〉(2005–2012),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2012–2023)은 각기 다른 시기 데크의 중심을 이루며, 이곳을
‘야외 조각 정원’으로 기능하게 했습니다. 이들 작업은 강한 수직성과 기념비적 스케일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조형물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이러한 수직적 전통을 의식적으로 전환합니다. 이번
작업은 시선을 위가 아니라 발밑과 수평의 방향으로 낮추고, ‘무엇이 놓이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걷고 머무르며 시간을 경험하는 환경’으로 데크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조각이 하나의 대상물로 놓이는 대신, 조경과 건축, 풍경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는 리움 데크 최초의 정원 형태 커미션이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공 정원으로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동시대 미술에서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구축해온 작가입니다. 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 미술계에 등장했으며, 이후
특정 매체나 작업실에 고정되지 않고 멕시코시티, 뉴욕, 도쿄, 파리 등 다양한 도시를 오가며 작업해왔습니다. 각 장소에서 발견한
사물과 환경에 최소한의 개입을 더해 그 안에 잠재된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입니다. 그의
작업은 일상의 사물과 상황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관람자의 인식 방식을 전환하는 데 주목해왔습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스케치, 2025 ©가브리엘 오로즈코
<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
은
오로즈코가
10
년간 전개해온 정원
-
조각 프로젝트의 세 번째이자
가장 종합적인 장
(
章
)
입니다
. 2016
년 사우스
런던 갤러리
(SLG)
에서 방치된 부지를 교차하는 원형 패턴의 영구 정원으로 변환한 것이 출발점이며
, 2019
년부터
6
년간 멕시코시티 차폴테펙 공원
(800
헥타르
,
약
242
만평
)
의
환경
·
문화 마스터플랜을 총괄하며 도시적 스케일의 공공 조각을 완성한 바 있습니다
.
리움에서
오로즈코는 이 두 경험의 축적 위에 세 번째 정원을 선보입니다
.
오로즈코는 이번 정원에서 그간의 궤적 위에 처음으로 동아시아 전통의 개념적 층위, 즉 '세한삼우(歲寒三友, Three Friends of Winter)'를
더합니다. 가장 혹독한 계절인 겨울에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정원을 지탱하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는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의 식물학적 골격이자 개념적
뼈대로, 화려함보다 지속성, 스펙터클보다 인내를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삼우(三友)의 '우(友)', 즉 '벗'이라는 의미처럼, 이
정원은 홀로 올려다보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머무는 공적 공간으로 설계된 작업입니다.
정원의 구조는 오로즈코 작업을 관통하는 '원의
배열' 모티프에 기반합니다. 하나의 원에서 출발한 기하학적
패턴이 약 500평 데크 전체로 확장되며, 크고 작은 원들이
연결되어 '플라자 1~10'이라는 열 개의 연속된 공간을
형성하는 구조입니다. 각 플라자는 바닥, 패턴, 식재, 벤치의 조합이 달라 저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갖습니다.
바닥에는 충청남도 보령에서 채석한 보령석을 맞춤 규격으로 가공해 원형 패턴대로
시공했습니다. 기존 데크 바닥의 자라목 목재는 건물 외벽 마감으로 재활용해 재료의 순환을 실천한 사례입니다. 소나무 17주, 매화나무 11주, 대나무 약 1,500주가
심어졌으며, 대나무 숲이 도시 소음을 차단하고 정원의 내밀한 공간을 형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백당나무, 설유화, 찔레나무, 물매화 등 흰 꽃 중심의 식물들이 세한(歲寒)의 절제된 색채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재로 감싸인 건물 외형과 원형 석재
바닥, 남산으로 이어지는 자연 풍경은 데크를 도시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정원처럼 보이게 합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2026, 서측 전경 ©가브리엘 오로즈코. 사진: 정희승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조각을 하나의
대상이 아닌 경험의 구조로 확장한 작업입니다. 이곳에서 조각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걷고 머무르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환경으로 작동합니다. 20여
년간 위로 솟아오르던 리움 데크의 조각적 전통은, 이제 수평적으로 펼쳐진 정원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관람객이 걷고 머무르는 경험 자체가 곧 작품의 일부가 되며, 그 과정이 조각의 가치로 제안됩니다.
이 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미술관 개관 시간 동안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잠시 들러 걷고 머무는 이곳은, 리움이 제안하는 새로운 공공적 예술 경험의 장으로 자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