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캔버스가 될 수 있을까 — 미래를 먼저 본 예술가, 백남준

텔레비전은 캔버스가 될 수 있을까 — 미래를 먼저 본 예술가, 백남준

미술관 한가운데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런데 화면에서는 익숙한 방송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상은 일그러지고, 전자 신호는 흔들리며, 여러 대의 모니터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처럼 쌓여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풍경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초라면 어땠을까요? 텔레비전은 미술 재료가 아니라 거실에서 방송을 받아보는 최신 가전제품에 가까웠습니다.

[[image:https://cdn.munwhamagazine.co.kr/news/photo/202203/228_165_195.jpg| 출처: 문화예술매거진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

그 기계에 손을 대어 ‘보는 물건’을 ‘표현하는 도구’로 바꾼 사람이 백남준(1932~2006)입니다. 오늘날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은 그를 국제적으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알려진 예술가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 화가의 생애보다 훨씬 흥미로운 질문과 만나게 됩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면, 예술은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갔고,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해 1956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독일로 향한 이유는 미술보다 음악에 가까웠습니다. 전위음악과 작곡, 퍼포먼스를 탐구하던 그는 그곳에서 존 케이지와 조지 마키우나스를 만났고, 일상의 사물과 행위, 우연과 실험을 예술 속으로 끌어들인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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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적 출발은 백남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텔레비전만 바라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리와 시간, 움직임, 공연에 관심을 가졌던 예술가가 새로운 전자매체를 만났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영상은 한 장의 그림처럼 가만히 머물지 않습니다. 이미지와 소리, 전자 신호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합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린 개인전입니다. 백남준은 이곳에 전자회로를 변형한 텔레비전들을 선보였습니다. 방송국이 보내주는 영상을 그대로 받아보던 기계가 그의 손을 거치자 화면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예술의 장치가 되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은 이 전시의 ‘준비된 텔레비전(prepared televisions)’이 텔레비전의 화면과 내용 자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설명합니다.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한 뒤 그의 실험은 더욱 넓어집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일본인 엔지니어 아베 슈야와 협업하여 여러 영상 신호를 결합하고 조작할 수 있는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했습니다. 회화에서 화가가 물감을 섞듯, 전자영상을 변형하고 합성하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기술자는 기계를 만들고 예술가는 그것을 사용하는 식의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기술과 예술이 함께 새로운 시각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image: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1501/407232_113493_3552.jpg|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969, (출처: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407232)]]

이후 텔레비전은 백남준에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첼로가 되기도 하고, 정원 속에 놓이기도 하며, 부처와 마주 앉기도 합니다. 《TV Cello》(1971), 《TV Buddha》(1974), 《TV Garden》(1974), 영상작품 《Global Groove》(1973)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이런 작품을 바라볼 때 재미있는 점은 그가 기술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두려워하기만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래된 문화와 첨단 전자기기, 자연과 텔레비전, 인간의 몸과 기계를 뜻밖의 방식으로 한자리에 놓고 우리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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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은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향했습니다. 1984년 1월 1일에는 위성방송 프로젝트 《Good Morning Mr. Orwell》을 통해 뉴욕과 파리 등을 연결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렸던 통제적인 미디어 사회의 이미지와 달리, 백남준은 전자통신이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가능성에도 주목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의 WNET-TV 스튜디오를 연결해 방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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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대형 설치작품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에서는 미국 지도의 윤곽을 네온으로 그리고 수십 개의 화면에 각 지역을 연상시키는 영상을 흘려보냈습니다. 물리적인 고속도로와 전자정보가 이동하는 새로운 길이 겹쳐지는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화면을 통해 국경을 넘어 소통하고, 영상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일상을 떠올리면 백남준의 관심이 얼마나 일찍 ‘연결된 세계’를 향하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남준을 단순히 ‘텔레비전으로 작품을 만든 최초의 세대’라고만 기억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그의 진짜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완성된 기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뜯어보고, 신호를 흔들고, 화면을 쌓고, 음악과 공연에 연결하며 계속 질문했습니다. **이 기계로 아직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2006년 백남준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질문은 오히려 지금 더 생생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우리의 시각 경험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백남준의 작품 앞에서 오래된 브라운관 TV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역설을 느끼게 됩니다. 기계는 이미 낡았는데, 그가 던진 질문은 아직 낡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백남준의 작품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텔레비전 몇 대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지를 묻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화면 너머로 그가 바라보았던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