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그림 한 점씩, 전쟁 속에서 현대미술을 구한 여자 — 페기 구겐하임

하루에 그림 한 점씩, 전쟁 속에서 현대미술을 구한 여자 — 페기 구겐하임

1940년,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때 한 미국인 여성이 파리의 화랑들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사들이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의 진격으로 도시 전체가 불안에 떨던 시기였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작품 한 점씩 구입하는 것.** 훗날 20세기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개인 컬렉션 가운데 하나를 완성하게 되는 페기 구겐하임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돈 많은 수집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예술가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 주었으며, 때로는 예술의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1898년 뉴욕의 부유한 구겐하임 가문에서 태어난 페기의 삶은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벤저민 구겐하임은 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의 일원이었지만,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페기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훗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토대를 마련한 솔로몬 R. 구겐하임은 그녀의 삼촌이었습니다. 그러나 페기는 가문의 명성과 재산에 기대어 안락한 삶을 보내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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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뉴욕의 전위적인 서점 선와이즈 턴(Sunwise Turn)에서 일하며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만난 그녀는 1920년대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마르셀 뒤샹,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기존의 미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특히 뒤샹은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페기에게 중요한 조언자였습니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어떤 예술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지 배우는 과정에서 그녀의 안목도 형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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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런던에 문을 연 화랑 '구겐하임 죈(Guggenheim Jeune)'은 그 안목을 실험하는 첫 무대였습니다. 이곳에서 장 콕토의 전시를 시작으로 바실리 칸딘스키 등 당대 전위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화랑 운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페기는 현대미술을 위한 미술관을 꿈꾸었고, 그 준비 과정에서 작품 수집에 더욱 몰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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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피카소, 브라크, 미로, 달리,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 유럽 현대미술의 핵심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였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걸작들이 아니었습니다.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이었습니다. 페기는 그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판단에 돈을 걸었습니다. 전쟁 중 수집한 작품들은 훗날 그녀의 컬렉션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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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미국으로 돌아온 페기는 이듬해 뉴욕에 '금세기의 미술(Art of This Century)'이라는 독특한 갤러리를 열었습니다. 건축가 프레더릭 키슬러가 설계한 전시 공간은 작품을 평범한 벽에 나란히 거는 관습에서 벗어나, 관객이 현대미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을 미국의 신진 작가들에게 연결해 준 이 공간은 뉴욕 미술계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잭슨 폴록의 발견과 후원**입니다. 당시 폴록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젊은 화가였습니다. 페기는 그에게 개인전을 열어주고 생활비 성격의 지원금을 제공하며 작품 제작을 후원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뉴욕 타운하우스 현관을 위한 대형 벽화 《벽화(Mural)》(1943)를 의뢰했습니다. 폴록이 훗날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후원은 단순한 작품 구매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페기는 이미 유명해진 작가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아직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재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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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에는 예술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인간관계도 있었습니다. 첫 남편은 다다이즘과 관련된 예술가 로런스 베일이었고, 두 번째 남편은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였습니다. 수많은 예술가와의 우정과 연애, 결혼과 이별은 그녀를 둘러싼 전설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페기를 단지 화려한 사교계 인물로 기억한다면 정작 중요한 업적을 놓치게 됩니다. 그녀가 예술가들과 맺은 관계는 작품을 이해하고 수집하며 후원하는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인 페기는 이듬해 베네치아 대운하에 자리한 18세기 궁전,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Palazzo Venier dei Leoni)에 정착했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아 단층의 독특한 외관을 지닌 이 궁전은 그녀의 집이자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페기는 일반 대중에게도 컬렉션을 공개했고, 오늘날 이곳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현대미술관인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9년 페기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베네치아 궁전 정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생전에 사랑했던 반려견들의 묘비도 그 곁에 자리합니다. 세계적인 미술 컬렉션과 한 인간의 사적인 기억이 같은 정원에 공존하는 풍경은 어쩐지 페기다운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술관에서 피카소와 칸딘스키, 폴록의 작품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아직 낯설고 논쟁적이던 시절, 누군가는 그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지지해야 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값비싼 그림들의 집합만이 아닙니다. **예술의 가치는 이미 인정받은 이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를 믿는 용기에서도 탄생한다는 사실.** 그녀의 컬렉션은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