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시작된 그림 — 인류 최초의 갤러리, 동굴벽화
미술에 관한 교양서적을 찾아보다가 의외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동굴벽화의 사진이었습니다. 동굴 벽에는 수많은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손바닥 모양이 빼곡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남긴 듯한 손의 흔적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원시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도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 벽을 가득 채운 손바닥들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예술적이고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궁전도, 흰 벽의 전시장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작은 햇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깊은 동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불빛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울퉁불퉁한 바위벽에 손을 대고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들소와 말, 사슴과 사자 같은 동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만 년이 흐른 뒤 우리가 그 앞에 섰을 때 놀라운 것은 그림의 오래된 나이만이 아닙니다. 그 선들이 예상보다 훨씬 생생하고 능숙하다는 사실입니다.
‘동굴벽화(cave painting)’란 말 그대로 동굴의 벽이나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회화의 한 장르이자 암벽미술의 중요한 형태입니다. 특히 구석기시대 동굴미술은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특정한 공간에 남겼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흔적입니다.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와 프랑스의 라스코, 쇼베 동굴은 그 세계를 대표하는 장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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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프랑스 남부의 쇼베 동굴은 우리의 시간 감각을 단숨에 흔들어 놓습니다. 이곳의 그림들은 약 3만~3만2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000점이 넘는 형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매머드와 들소뿐 아니라 동굴사자, 코뿔소, 곰처럼 당시에도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웠을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단순히 동물의 윤곽만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음영과 중첩, 벽면의 굴곡을 이용해 움직임과 입체감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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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코 동굴로 가면 선사시대 화가들의 ‘화구’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검은색에는 망간 산화물이나 숯이, 붉은색에는 적철석, 노란색에는 침철석 같은 광물성 안료가 사용되었습니다. 안료 덩어리를 갈고, 물과 섞고, 붓이나 찍어 바르는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손 자체를 스텐실처럼 이용하거나 안료를 뿜어 표현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라스코의 자료를 보면 그림뿐 아니라 새기기, 선묘 등 여러 기법이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동굴벽화를 ‘원시적인 낙서’ 정도로 생각한다면 실제 작품 앞에서는 금세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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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알타미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타미라를 비롯한 스페인 북부의 동굴들은 약 3만5천 년 전에서 1만1천 년 전까지 이어진 후기 구석기시대 예술의 전개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됩니다. 그림과 새김, 조각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이미 복잡한 시각 표현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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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굳이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그림을 그렸을까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어떤 의례나 신앙과 관련되어 있었을까요. 혹은 공동체가 공유한 이야기를 기록하려 했던 것일까요.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 왔지만, 모든 동굴벽화를 하나의 목적만으로 설명할 확실한 답은 아직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미지의 부분이 동굴벽화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무엇이 그려졌는지는 볼 수 있지만, 그것을 그린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굴벽화를 볼 때에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만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동물의 몸, 뿔의 방향, 등과 배의 곡선, 겹쳐진 다리…. 그것을 그린 사람들은 동물을 오래 관찰했고, 특징을 골라내어 몇 개의 선으로 압축할 줄 알았습니다. 수만 년의 시간이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고 있지만, 무언가를 바라보고 기억한 뒤 다시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행위만큼은 놀랍도록 낯설지 않습니다.
동굴벽화 앞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오래된 그림’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인간이 눈앞에 없는 것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그것을 선과 색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흔적입니다. 캄캄한 동굴에서 작은 불빛이 바위벽을 비추었을 때, 그 벽 위의 동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도 그 먼 경험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굴벽화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습니다. 수만 년 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남긴 선 하나가 아직도 우리의 눈에 도착하고 있다는 것. 미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인간의 아주 오래된 마음과 마주하게 됩니다.